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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술의 진화론적 발전 과학

 우리가 생명체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다룰 때 우리의 예측능력 (물리적으로 단순화된 모델을 통해서든, 컴퓨터링 통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든)은 많은 한계를 보인다. 복잡한 대상에 대한 예측값은 실험에서 얻은 복잡한 변수들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마저도 정확성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생물학과 같은 분야는 예외이다)


이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다룰 경우 실험가의 단순한 반복실험이나 발명가의 우연한 실험이 우리를 올바른 결론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이로인해 미래의 이론가들은 미리 예측하기보다는 실험적 결과물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게될 공산이 크다. 고에너지 물리학에서는 여전히 이론이 실험을 앞서가지만, 고체물리학이나 특히 연성물리학에서는 이론이 실험에 한발짝 뒤쳐진다. 그리고 복잡계를 다루는 생물학이나 생물물리학에서는 거의 항상 실험이 이론을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는 이런 현실이 미래에 개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지금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계를 흉내내게 될 미래의 기술들은 이와같은 진화론적 방식 (흔히 말하는 trial and error 방식)으로 개발될 공산이 크다.


생명의 탄생과 수렴진화(공통 조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 여러 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됨. 눈의 구조나 로돕신이라는 공통된 단백질이 발현되는 것 등)는 현재 과학지식으로는 불가능한 확률을 요구하는 현상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은 생명 발생과 진화에 관해 우리가 모르는 진화의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이는 또한 진화론적 발전의 놀라운 성취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데, 역사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생물학자의 연구 방식을 경멸했다지만, 곧 우리는 생물학자의 방식으로 기술개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기술발전의 진화론적 성격이 강해질 것이며, 기술진보에 있어 인간의 지성보다는 우연의 성과가 앞서가게 된다. 이때 기술의 진보는 생명체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많이 더뎌지고 점진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놀라운 기적과 마찬가지로 그 오랜 성취와 점진적 진보의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울 것이다. 또한 이 기술에 자연이 갖지못한 인공물의 성취를 가미되면서 미래의 기술은 놀랍도록 세련되고 강력한 모습을 갖게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들은 생물학적 유연성 (지능적 판단, 자기 치유, 자기 개선, 자기 복제)과 인공적 강력함 (뛰어난 연산능력, 가혹조건에서의 생존능력, 정보전달의 광속에 가까운 신속성)을 두루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이미 조금씩 실현이 되어가고 있으나  (유비쿼터스, 사물인터넷, 번역기(전문가시스템) 등) 이들 기술의 '생물학적 유연성'은 아직 지극히 초보적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발전은 진화론적 방식으로 비교적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늦둥이? 사회

에블린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의 첫째 아들 한스가 입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에블린 본인은 자신이 아인슈타인의 딸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뉴욕에 있는 어느 댄서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녀 말이 맞다면, 그녀는 1941년생이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예순이 넘어서 그녀를 가졌다는 것이 되는데... 아인슈타인의 바람기와 첫째 딸 리제를에 관련된 의혹들그리고 무엇보다 에블린 그녀의 그 독특한 코! 생각한다면 믿지 못할 이유도 없을것 같다 ^^.

 

한스의 차남 폴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을 물려받았는데, 작곡가겸 바이올리니스트로 프랑스에서 활약했다 한다 .

 

참고자료:http://wiki.answers.com/Q/Does_Albert_Einstein_have_any_living_grandchildren


박테리아의 이타성

http://radar.ndsl.kr/radDetail.do?cn=GTB2010090132

 

요약

: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박테리아 군집을 형성시킴.각 박테리아들의 항생력을 측정하였으나, 놀랍게도 소수의 슈퍼박테리아가 갖는 항생제 내성(및 증식력)을 대다수의 박테리아는 갖고 있지 않았음.

 

지속적인- 그러나 치명적이지는 않은 - 스트레스 상황에서 유전적 돌연변이를 통해 탄생한, 슈퍼박테리아는 인돌분자를 분비하게 되는데, 이 분자는 내성을 갖지 못한 박테리아가 항생제를 세포밖으로 밀어내는 '배출 펌프'의 기능을 향상시킴. 슈퍼박테리아는 에너지 소모가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는데도 불고하고 이와같은 '이타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

 

 이와같은 이타적 전략은, 무능한 개체가 도태되고 슈퍼박테리아가 집단의 중심세력으로 확대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며 집단 수준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할 수있어, 장기적으로 집단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함.

 

ps.이젠 '이런 단세포같은 XX'라고 욕하지 맙시다... 박테리아도 그들의 동료의 필요를 이해?하고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니!!


데이빗 차머스, 좀비, 버클리, 관념론

이전에 뉴런의 발화와 우리의 일인칭 '경험'을 일치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족감을 유물론을 버린 논거로 사용하였다.
데이빗 차머스는 concievable argument를 통해 일인칭 경험이 없는 좀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으로 물질주의(유물론)의 한계로 지적하였다.
물론 또 다시 그의 지적대로, 직관에 어긋난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현대물리학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실제로 자연이 우리의 직관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직관에 어긋나는 진실을 받아들이려면 그만큼 강력한 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좀비에 관한 이 concievable argument는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누구도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임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이원론적 모든 주장(데이빗 차머스가 이름붙인 type D, E dualism)은 그 자체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뿐 아니라 마음-물질 상호작용이라는 난감한 문제 때문에 논리정연하고 말끔한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라이프니츠가 단자론에서 신과 뉴턴과학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창이 없는) 단자를 가정했듯, 애초에 상호독립적인 몸과 마음의 일종의 병행을 가정한다면 문제는 사라지겠지만 여전히 매우 불만족스럽다.

결국 문제를 가장 단순화시키고 어떤 이원론의 문제도 남기지 않고, 데이빗 차머스의 문제제기도 피해갈 수 있는 존재론은 조지 버클리류의 주관적 관념론밖에 없다.

데이비드 차머스의 좀비논변에 대한 생각 조지 버클리

제가 지금까지 데이비드 차머스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깔끔한 논리에 호감을 느끼긴 했습니다. 특히 zombie논변은 재미가 있지요. 우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나, 즉 기능주의적으로 구별불가능하나,  '경험'하지는 못하는 좀비를 가정하고, 이 좀비가 가능하다면, 우리의 세계는 물리적인 것만으로는 모두 설명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으로 닫혀있다고 말합니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잠정적이나마-과학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으로부터 그가 부수현상론자(type-E dualism, 의식이 일종의 극장의 관객으로 보는 입장. 관객은 영화의 편집에 참여하지 못하죠)이거나 type-F 일원론자(의식을 물리적 법칙의 기본법칙의 하나로 간주)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사실 여기에 이르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세계가 물리적으로 닫혀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경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만일 차머스의 말대로 물리적이지 않은 무엇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우리의 1인칭 '경험'이 이에 대한 근거라면, 이 비물리적 지식이 어떻게 우리의 물리적 뇌속에 개념화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는 언듯 차머스가 부정하는 데카르트식 이원론(type-D 이원론의 일종)으로 우리를 이끄는듯 합니다. 그런데도 세계가 물리적으로 닫혀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 아닐까요?
물론 만일 물리적으로 우리와 완벽히 동일한 좀비를 상상한다면, 그 좀비조차 우리와 같은 물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닫혀있지만, 우리가 '우리는 왜 주관적인 경험을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좀비 역시 동일한 물음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즉 차머스에 의하면 비물리적일것이 분명한 우리의 이 지식조차 물리적 세계에 닫혀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차머스의 논지에 따르면 우리는 여전히 기능적으로 구별할 수 없지만 '경험'은 하지 않는 좀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논지가 쉽게 반박될 수 없는 이유이고, 철학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이에 대해 과학자라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를 통해 습득된 인과율에 대한 확고한 심상, 그리고 이 심상이 이 논리가 미시시계에서도 까마득한 거시세계에서도 '우연하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물리적으로 닫혀있어여 할 차머스의 '경험함' 역시 이런 기막한 우연의 하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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